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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18일 월요일

신천지-물에 잠겼다 나와야 세례일까요? 참된 세례의 의미는 무엇인가?





신천지-물에 잠겼다 나와야 세례일까요?
참된 세례의 의미는 무엇인가?







물에 잠겼다 나와야 세례일까요?
머리에 물을 뿌리는 것이 참된 세례일까요?





예장통합 이단사이비대책위 최삼경 위원장


세례식, 기독교의 거룩한 전승


사도 시대부터 성례전 지켜와




세례식은 성찬식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거룩한


교회의 예식이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1:23에서 성찬


식을 가리켜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라


고 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사도시대부터 교회는 성례전을 거


룩하게 행하여 왔다. 이를 무시하는 곳은 기독교의 바른 전승


을 가진 집단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드러낸 일이다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최동희 강사


진정한 세례, 말씀과 성령으로


마음으로 회개하고 거듭나야


 마 3장에 보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강 사방에서 사람들이 세례 요한의 말을 듣고 나와 자기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았다. 요한은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세례를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7~8절).’하고 꾸짖었다.











하나님의 진노는 물로 세례를 받는다고 피할 수 없다. 특히, 바리새인들처럼 외식적인 신앙을 하는 자(마 23장 참고)에게는 마음의 거듭남이 필요하다. 마음으로 회개하여 거듭나지 않으면, 아무리 세례를 받아도 효력이 없다.






또한 세례 요한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9절).’고 지적하였다. 그들은 혈통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었으나, 영적으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마귀의 자식이기 때문이다(요 8:44). 요한의 말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부패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삼을 바에야 ‘돌들로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들 것이라(9절).’고 하였다.






그리고 요한은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질 것이라(10절).’고 했다. 도끼와 불은 심판을 의미하고,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다 함은 이스라엘 모든 백성을 심판할 준비가 이미 끝났음을 뜻한다.


요한은 말하기를 자기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자기보다 훨씬 능력 있는 분 즉 그리스도가 뒤에 오셔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신다고 하였다(11절). 여기서 불이란 모든 악한 것을 사르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렘 5:14, 눅 12:49).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요한과 같이 형식적인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진정한 세례를 베푸셨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불과 성령 세례를 받고 거듭나야만 소망하는 천국에 갈 수 있다.




고신대학교 신학과 송영목 교수


세례 후엔 합당한 열매 맺어야


심판만 피하려 세례 받으면 ‘기만’




세례자 요한이 베푼 세례의 기원은 무엇인가? 구약의 정결과 에센과의 경절과 부분적으로 유사하다. 요한 당시에 의식적인 부정을 면하기 위해서 물에 몸을 담그는 관습이 있었고, 이방인 노예가 유대인의 소유로 넘어갈 때 할례와 더불어 침례를 받아야 했다(참고 예레미야스, 1988:436). 요한의 세례는 하나님이 직접 계시하신 것이다(참고 요 1:33). 요한이 시행한 세례는 죄인이 회개하고 천국 백성의 일원이 되는 공적인 표였다.






하지만 요한의 세례는 죄를 사하는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참고 리델보스, 1991:89). 요한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받으러 오는 것을 보고 ‘독사의 자식들아(gennemata echidnon)’라고 책망한다. ‘독사의 자식들’은 옛 뱀 즉 마귀의 자녀, 마귀의 졸자라는 말이다(참고 요 8:44). 요한은 누가 임박한 심판을 피하기 위해 세례를 받으라고 이들에게 말해 주었는지 묻는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없고(8절), 그 열매를 맺으려는 소망이 없어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것은 책망 받아 마땅한 기만적 행동이다.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사실이 천국 백성의 자격이 될 수는 없다(9절).






생물학적인 후손이 아니라 재창조된 후손이 새 이스라엘이다(참고 갈 3:7~9). 천국의 도래는 임박한 심판판도 수반한다(10절). 회개에 따르는 행동의 변화가 ‘합당한 열매’인데(참고 눅 3:8), 이것이 없다면 심판을 받게 된다. 이 심판은 요한의 메시지를 들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삶 속에 현재적으로 임하면서, 동시에 A.D. 70년 사건과 주님의 영광 중에 임할 마지막 심판을 얘기한다. 하나님의 손이 ‘전지 작업’을 시작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경건한 자들의 구원과 동시에 이 세상을 멸하사 자신의 심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참고 칼빈 1993:193).






물로 세례를 베푼 요한보다 능력이 많으신 예수님은 성령님 곧 불로 세례를 주신다(11절). ‘불’은 성령의 정결하게 하시는 속성을 가리킨다(참고 칼빈 1993:198 비교 요 3:5). 세례를 모든 믿는 자에게 부으실 예수님의 사역은 종말론적이다. 왜냐하면 종말에 하나님의 신이 (이방인인) 남종과 여종, 자녀, 늙은이, 청년에게 임할 것이기 때문이다(참고 욜 2:28~32). 요한은 이 놀라운 사역을 수행하실 예수님의 신을 벗기고 옮기기에 부적합한 모습을 발견한다. 이 메시지는 메시아 대망의 불길을 재점화하는 효과가 있었다.






‘불’은 심판의 측면으로 우선적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참고 12절의 '키[winnowing fork]), 강력한 성령의 사역으로도 볼 수 있다. ‘키’는 회개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의 분리를 상징한다. 그리고 ‘타작마당’은 쭉정이로부터 정결하게 되어야 하는 교회를 가리킨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성령님으로 세례를 베푸셔야만, 교회는 물로 세례를 줄 수 있다. 비록 요한이 옛 시대의 마지막 주자이며, 새 시대를 향한 가교 역할을 했다고 하지만, 사람들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것은 성령의 역사임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요한의 사역에 이미 종말론적인 은사인 성령의 구원의 역사가 나타나고 있다.










계약신학대학원대학교 이병규 이사장


세례, 침례 아닌 적수(滴水)로 해야


침례라면 베드로가 삼천명 세례 못줘




세례의 뜻은 ‘씻어서 정결케 한다’는 뜻입니다. 세례는 죽었다가 살아나는 의식이 아니고 정결케 하는 의식입니다. 에스겔에 ‘맑은 물을 뿌려서 정결케 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제도가 요한의 때까지 내려와서 요한이 구약 때부터 내려오던 의식을 행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 사람들이 무슨 제도가 새로 생겼느냐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또 세례요한이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세례 받으러 나오므로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회개의 세례는 구약 때로부터 내려왔습니다.






구약의 성례는 유월절과 할례이며 신약의 성례는 세례와 성찬입니다. 성찬은 유월절에 해당하고, 할례는 세례에 해당됩니다. 할례는 구약의 예식으로 할례의 뜻은 ‘하나님께 속한다, 정욕을 제거한다,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한다, 하나님의 백성이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으셨습니다. 참 이스라엘 백성이 되는 의식에 참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표로서 또 하나님의 제도에 순종하여 의를 이루는 의미에서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또 성도의 모범이 되기 위해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세례 받으실 때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왔겠느냐? 물을 떠서 세례를 주었겠느냐? 하는 세례 방식이 문제입니다.






본문 16절에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라고 하였습니다. 물속에 들어갔다가 ‘물속에서 나왔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물’에서 올라오셨다고 하였습니다. ‘물에서 올라 오실새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했다’고 했습니다.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이 아닙니다. ‘물속’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세례요한도 세례를 주고 물속에서 올라왔다고 하면, 세례요한도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왔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8:38~39에 빌립이 내시에게 세례를 줄 때 물에 내려가 세례를 주고 물에서 올라왔다고 했지, 빌립이 물속에 내려가 물속에서 올라왔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물에서 떠서 세례를 주고 육지로 올라온 것입니다. 물속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영어 성경에도 물속에서 나왔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물에 내려가서 물을 떠서 세례를 주고 물에서 육지로 올라온 것이라고 하여야 옳습니다. 침례교에서는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례의 뜻이 우리와 다릅니다. 침례교 세례의 뜻은 물속에 들어가는 것은 옛 사람이 죽어서 장사지내는 것이고, 물속에서 건져서 축복해 주는 것은 새 사람으로 살아났다는 것을 상징하는 예식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아닙니다. 구약에서부터 내려오는 뿌려서 정결케 하는 예식에 의해서 씻어 정결케 하는 예식이며, 물로 뿌려서 정켤케 하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물속에 담갔다가 물속에서 꺼냈다면 베드로가 어떻게 하루에 삼천 명을 세례를 주었겠습니까? 철야하면서 세례를 주었다고 해도 삼천 명 세례를 못줍니다. 사도행전 16:33에도 옥사장이 세례를 받을 때 물가에 내려가서 세례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물을 떠서 세례를 주는 적수세례가 옳습니다. 






결론



마3장에서 예수님은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구약의 말라기
의 예언처럼 길 예비 사자의전에서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는 하나님 의를 이루는 일이었다(마3:13~16)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은 모형과 그림자라고
할 수 있다.
물로 육체의 더러움을 제하는 것을 말함이
아니다.
렘2:22 "네가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수다한
비누를 쓸지라도 네 죄악이 오히려 내 앞에 그저 있으리라 " 하신 것처럼 물로 사람의
죄악을 씻을 수 없고 오직 하늘에서 내리는 물 (수정같은 생명수)로  사람의  죄를 씻을 수 있다.

 물은 구원의 표이며 오직 선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 진정한 세례이다.
그러므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천국을 볼 수 있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요3:5)

신약의 계시 말씀을 듣고 깨끗하게 씻어
옛사람을 벗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이 되어야 거룩하신 하나님을 모시고 소망에 들어갈 수 있다.










                                  

댓글 4개:

  1. 세례의 참 의미를 깨달았다면 세례의식에 아직도 매일 것이 아니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한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을 모실 수 있도록 진리로 거룩함을 입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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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지금하는 세례는 신앙고백입니다. 성경을 모르니 오해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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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신천지에서도 세례를 받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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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신천지에 가면 세례를 다시 받아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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